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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변의 온톨로지] 생성형 AI와 기업 영업비밀 보호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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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협력사·외주사 기술자료 제공 및 AI 사용 이력 관리

정관영 한국영업비밀보호협회장/로데이터 대표변호사

제조업에서 기술자료는 회사 안에만 있지 않습니다. 금형을 맡기려면 도면을 줘야 하고, 설비를 고치려면 사양서를 줘야 하고, 검사를 맡기려면 공차 기준을 줘야 합니다. 중견 자동차부품사 A사를 가정해 보겠습니다. 신규 금형 개발을 위해 협력 설계업체에 3D 도면과 공차 기준을 제공했습니다. 제공 사실은 메일과 대장에 남았습니다. 설계업체 담당자는 검토를 빨리 끝내려고 공차 부분을 외부 AI에 넣어 검산했습니다.

자료가 나가는 순간 우리의 물리적 통제는 끝나고, 남는 것은 계약과 기록뿐입니다. 1년 뒤 유사한 형상의 금형이 경쟁사에서 나왔을 때, A사는 무엇을 제공했는지는 말할 수 있지만 그 자료가 어디를 거쳤는지는 말하지 못합니다.

문제의 소재

첫째, 여기서부터는 권고가 아니라 의무입니다. 지금까지 이 시리즈에서 다룬 조치는 대부분 “이렇게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성격이었습니다. 협력사 기술자료는 다릅니다. 하도급법과 상생협력법은 자료를 요구하고 받는 절차 자체를 법으로 정해 두었고, 위반에는 과징금과 징벌적 손해배상이 따릅니다.

둘째, 절차를 어긴 것만으로도 제재를 받습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철도차량·전기버스 제조업체가 수급사업자에게 축전지 구성품 설명서, 2D·3D 도면, 배터리팩 유지관리 지침서 등 기술자료 11건을 요구·수령하면서 법정 기재사항을 적은 요구 서면을 주지 않았고, 그중 3건은 비밀유지계약도 체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정명령과 과징금 1억 2,600만 원을 부과한 바 있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기술자료를 유용한 사실은 적발되지 않았음에도 절차 위반만으로 제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앞서 2026년 4월 5일에 공정위는 공장자동화 장비 제조업체가 수급사업자가 개발한 기술자료의 권리를 정당한 대가 없이 자기에게 귀속시키는 부당특약을 설정하고, 로터 조립라인 도면을 요구하면서 요구 서면을 교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징금 1억 1,200만 원을 부과하였습니다. 두 사건 모두 자료를 빼돌린 것이 아니라 받는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셋째, 정부의 집행 체계가 촘촘해졌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26년 1월 22일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범부처 대응단을 출범시켰습니다. 중기부를 중심으로 산업통상부, 공정거래위원회, 지식재산처, 경찰청, 국가정보원 등 6개 부처가 참여합니다.

법적 쟁점 세 가지

. 기술자료 제공 시점에 발생하는 법률상 의무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12조의3에 따르면 원사업자는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를 자기 또는 제3자에게 제공하도록 요구할 수 없고, 정당한 사유를 입증한 경우에만 요구할 수 있습니다(제1항). 요구할 때에는 요구목적, 권리귀속 관계, 대가 등을 미리 협의하여 정한 뒤 그 내용을 적은 서면을 주어야 합니다(제2항). 그리고 기술자료를 제공받는 날까지 기술자료의 범위와 보유할 임직원 명단, 비밀유지의무 및 목적 외 사용금지, 위반 시 배상 등을 담은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해야 합니다(제3항). 취득한 기술자료를 자기 또는 제3자를 위하여 사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하는 행위는 금지됩니다(제4항).

여기서 두 가지를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하나는 제3항의 시점입니다. “제공받는 날까지”이므로, 자료를 먼저 받고 계약서를 나중에 정리하는 관행은 그 자체로 위반이 됩니다. 다른 하나는 제4항 위반의 무게입니다. 2024년 시행된 개정 하도급법은 기술유용에 대한 배상 한도를 손해액의 3배에서 5배로 올렸고, 손해액 산정 기준을 함께 두었습니다.

한편, 하도급법이 적용되지 않는 수탁·위탁거래에는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 작동합니다. 위탁기업은 정당한 사유 없이 기술자료 제공을 요구할 수 없고(제25조 제1항 제12호), 취득한 기술자료를 정당한 권원 없이 유용할 수 없습니다(제25조 제2항). 수탁기업이 기술자료를 제공하는 경우 양측은 비밀유지계약을 서면으로 체결해야 합니다(제21조의2). 최근에는 기술자료 유용에 대한 금지청구권도 도입되어, 손해배상만이 아니라 사용 자체를 멈추게 하는 수단이 생겼습니다.

. 계약과 사후 구제

기술자료가 협력사를 통해 새어 나갔을 때 회사가 기대는 것은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3호 (라)목입니다. 계약관계 등에 따라 영업비밀을 비밀로서 유지할 의무가 있는 자가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보유자에게 손해를 입힐 목적으로 사용·공개하는 행위입니다.

여기서 ‘목적’이 관건입니다. 대법원은 2024년 11월 20일 선고한 판결에서, 여러 사람이 영업비밀을 공동으로 보유하는 경우에도 그중 계약관계 등에 따라 다른 보유자에 대하여 비밀유지의무가 있는 자가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다른 보유자에게 손해를 입힐 목적으로 사용·공개하였다면 (라)목 침해가 성립할 수 있다고 하면서, 그 목적 유무는 영업비밀의 취득 경위와 내용, 경제적 가치, 사용의 목적·방법·태양, 다른 보유자에 대한 의무의 내용과 정도, 다른 보유자에게 발생한 손해 등을 종합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24. 11. 20. 선고 2021다278931, 2021다278948 판결). 그 사건에서 대법원은, 문제된 기술정보가 양측의 실질적 기여로 개발되어 공동으로 귀속되고, 개발용역계약서에도 일방에게 단독 귀속된다고 볼 근거가 없으며, 사용 방법·거래처·사용권한에 관한 별도의 정함이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손해를 입힐 목적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이 판결이 협력사 관리에 주는 시사점은 분명합니다. 계약서에 권리귀속과 사용범위를 적어 두지 않으면, 상대방이 그 자료를 다른 곳에 쓰더라도 나중에 이를 침해로 구성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다만 이 판결은 공동개발 사안의 개별 사실관계에 관한 것이므로 일반화에는 주의가 필요)

. 생성형 AI의 등장과 제도의 공백

현행 법제는 ‘제공 시점’에 중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제공 이후 그 자료가 어떤 도구를 거쳐 처리되는지에 관해서는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아니합니다. 협력사가 외부 AI 서비스에 우리 회사의 기술자료를 입력하는 것에 대하여는 제도상의 공백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단계에서는 이 공백을 각 기업이 계약 문언으로 메워야 합니다.

다음은 정책 제안입니다. 첫째, 공정거래위원회 표준비밀유지계약서와 중소벤처기업부 표준 서식에 외부 AI 서비스 입력·처리에 관한 선택 조항을 예시로 넣는 방안. 둘째, 기술자료 제공 이력 관리에 처리 경로 항목을 포함시키는 방안. 셋째, 범부처 대응단이 AI·클라우드 환경에서의 기술자료 관리기준을 별도 과제로 다루는 방안입니다. 세부적인 내용은 정책·입법과제를 제안하는 기회를 마련하여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실무에서 자주 나오는 질문

Q. 협력사가 우리 자료를 AI에 넣었는지 우리가 확인할 방법이 있습니까?

직접 확인할 방법은 사실상 없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탐지가 아니라 계약과 진술의 문제로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정기적으로 이용 중인 AI 서비스 목록과 처리 이력을 제출받고, 그 진술이 사실과 다를 경우의 효과를 계약에 정해 두는 방식입니다. 완벽한 통제는 아니지만, 최소한 상대방이 어떤 의무를 부담했고 무엇을 진술했는지가 남습니다. 덧붙여, 우리가 넘기는 파일 자체를 줄이는 것이 여전히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전체 도면 대신 필요한 치수만, 원본 파일 대신 열람 권한만 주는 구성을 먼저 검토하십시오.

Q. 협력사가 우리 승인 없이 AI를 썼다면 곧바로 영업비밀 침해입니까?

아닙니다. 계약 위반과 영업비밀 침해는 요건이 다릅니다. 계약을 어긴 사실만으로 부정경쟁방지법상 침해가 되는 것은 아니고, 앞서 본 (라)목은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손해를 입힐 목적을 요구합니다. 다만 계약에 사용범위가 명확히 적혀 있었다는 사정은 그 판단에서 고려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면 그 사정은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Q. 우리가 대기업으로부터 자료를 요구받는 쪽인데, 서면을 달라고 하면 거래에 지장이 있지 않겠습니까?

현실적인 걱정입니다. 다만 서면 교부와 비밀유지계약 체결은 요구하는 쪽의 법정 의무이므로, 요청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요구가 되지는 않습니다. 실무적으로는 담당자 간 구두 요청보다 공식 문서로 “요구목적과 권리귀속을 적은 서면을 주시면 자료를 준비하겠다”고 회신하는 편이 서로에게 안전합니다. 그 회신 자체가 기록이 됩니다.

맺으며

협력사 관리에서 회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자료가 나가는 순간까지입니다. 그 뒤로는 계약에 무엇을 적어 두었는지, 그리고 어떤 기록을 남겼는지만 남습니다. 법이 요구 서면과 비밀유지계약을 제공 시점에 걸어 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 시점을 놓치면 나중에 되돌릴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새로운 위험이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도면 한 장이 경쟁사에 닿기까지 사람과 시간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붙여넣기 한 번으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곳에 자료가 남습니다. 그래서 계약서에 한 줄을 더 넣는 일이 예전보다 훨씬 큰 차이를 만듭니다. 다음 계약 갱신을 기다리지 마시고, 지금 진행 중인 거래의 제공 대장부터 채워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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