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변의 온톨로지] 피지컬 AI 시대, 장인의 암묵지가 중요한 이유
아직 문서가 되지 않은 지식, 즉 숙련자의 ‘몸’에 체화되어 있는 암묵지(Tacit Knowledge)를 찾아내 지식으로 구조화하고 기업의 기술자산으로 지키는 원칙을 10 차례에 걸쳐 정리 예정
정관영 한국영업비밀보호협회장/로데이터 대표변호사
1. 정년을 앞둔 반장과 로봇 회사의 제안
경남의 주물 부품 중소기업 A사에는 30년 넘게 쇳물 주입을 맡아 온 B 반장이 있습니다. B 반장은 쇳물의 색과 흐름을 보고 주입구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며 주입 속도를 바꿉니다. 작업표준서에는 온도 범위와 주입 시간만 있을 뿐, 언제 왜 속도를 바꾸는지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B 반장은 2년 뒤 정년을 맞습니다.
그 무렵 한 로봇․AI 업체가 “반장님 작업을 석 달간 영상과 센서로 수집해 로봇에 학습시키겠다”고 제안합니다. 계약서 초안에는 수집한 장인(匠人)의 데이터와 학습된 모델이 누구에게 속하는지, 계약이 끝나면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빠져 있습니다. B 반장에게 무엇을 설명하고 어떻게 참여를 요청할지에 관해서도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위험이 겹쳐 있습니다. 암묵지가 장인의 은퇴·사망·이직으로 인해 사라질 위험, 수집한 지식이 회사 밖으로 유출될 위험, 장인·회사·외부 사업자 사이의 권리관계가 정리되지 않은 채 일이 진행될 위험입니다.
2. 왜 지금 암묵지인가?
정부는 피지컬 AI를 로봇 등이 “물리 환경에서 스스로 인지·추론·행동하는” AI로 설명하고, 제조 현장의 행동 데이터 같은 특화 데이터를 확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보고 어떻게 판단하여 행동하는지가 AI의 학습 재료가 된다는 뜻입니다.
산업통상부는 지난 6월 올해 추경 480억 원으로 30개 공정의 제조 암묵지 데이터셋 구축과 AI 모델 개발을 지원하는 시범사업에 착수했다고 밝혔습니다. 9월 23일 지식재산처 등이 연 포럼에서는 숙련자 노하우로 축적된 데이터의 귀속과 보상, 유출방지가 쟁점으로 다뤄졌고, 지식재산처장은 권리관계를 명확히 하고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데이터화는 이미 속도를 내고 있지만, 권리관계를 정리하는 논의는 이제 시작 단계라고 봅니다.
숙련 인력의 연령 구조도 이 일을 미룰 수 없게 합니다. 「2025년 뿌리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말 주조․용접 등 뿌리산업 종사자 약 74만 명 가운데 50대 이상은 약 37%였고, 내국인만 보면 약 41%였습니다(공표된 표로 계산).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는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로 다 하지 못한 지식이 이제 데이터가 되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3. 법은 암묵지를 어떻게 보는가?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2호는 영업비밀을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며, 비밀로 관리된 기술상·경영상 정보로 정의합니다. 이 기준에 비추어 세 가지를 짚어 두겠습니다.
첫째, 숙련자의 머릿속에만 있는 지식은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대법원은 영업비밀 침해행위의 금지를 구하려면 비밀성을 잃지 않는 한도에서 가능한 한 영업비밀을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한다고 봅니다(대법원 2013. 8. 22.자 2011마1624 결정).
둘째, 기록했다고 곧바로 영업비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암묵지를 식별해 기록·구조화한 뒤 가치와 권리관계를 평가합니다. 이때 특허로 공개할 것과 영업비밀로 관리할 것, 안전·품질을 위해 공유할 것을 각각 구분하고, 보호할 정보를 비밀로 지정해 접근·이용을 통제해야 관리와 입증이 가능해집니다. 이 순서는 개념을 나눈 것일 뿐이어서, 촬영·녹음·센서 수집·외부 AI 입력 전부터 권리·개인정보·보안 검토를 함께 해나가야 합니다. 저는 이를 ‘통제된 표출화’라고 부릅니다.
셋째, 숙련자가 아는 모든 것이 회사의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경쟁 회사의 채용 목적이 직원이 전 직장에서 얻은 “일반적인 지식, 기술, 경험”을 넘어 비밀유지의무를 지고 습득한 “특별한 지식, 기술, 경험”의 사용에 있었다는 원심 판단을 정당하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1996. 12. 23. 선고 96다16605 판결). 일반적 숙련까지 독점하려 하면 법적으로도, 숙련자의 협조를 얻는 데서도 어렵습니다. 이 경계는 ⑥화에서 다루겠습니다.
4. 회사가 결정해야 할 사항
이번 회차에서 권하는 결정은 하나입니다. 경영자가 암묵지 보존·보호를 시작할 공정 한 곳과 책임자 한 명을 정하는 것입니다. 숙련자의 은퇴가 가깝고, 품질·원가·안전에 미치는 영향이 크며, 외부 AI·로봇 사업자와 논의 중이거나 정부 지원사업 참여를 검토 중인 공정이 우선 후보입니다.
책임자는 세 가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 공정에서 누가 매뉴얼에도 없는 사항에 대해 판단하는지, 외부에 이미 주었거나 주기로 한 데이터가 무엇인지, 숙련자에게 무엇을 설명하고 어떤 방식으로 참여를 요청할지입니다. 숙련자가 느끼기에 암묵지의 기록은 감시나 대체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니, 목적과 활용 범위부터 먼저 설명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외부 사업자와 계약을 앞두고 있다면 수집 데이터·학습된 모델·파생정보의 귀속, 이용 범위, 비밀유지와 보안 책임, 계약 종료 후 반환·삭제에 관하여 명확하게 규정한 후에 수집을 시작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수집하기 전에 법에서 요구하는 절차도 있습니다. 영상·음성의 경우 얼굴이 보이지 않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해 누구인지 알 수 있으면 개인정보이므로(함께 찍히는 동료 포함) 개인정보 보호법상 수집 근거를 먼저 갖춰야 합니다. 상시 근로자 30명 이상 사업장에서 로봇 같은 신기계·기술을 도입하는 일은 노사협의회 협의 사항입니다[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약칭: 근로자참여법) 제20조 제1항 제9호]. 대법원은 공장 CCTV 사건에서 설치 목적이 감시가 아니어도 실질적으로 근로자를 감시하는 효과가 있으면 협의 대상인 ‘근로자 감시 설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23. 6. 29. 선고 2018도1917 판결). 기록용 카메라와 센서도 이 기준에 해당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숙련자는 지식을 나누는 기여자이자 판단의 주체입니다. 기여를 인정하고 보상해주는 원칙은 회사가 직무발명을 승계하는 경우처럼 법이 보상을 정한 때가 아니면 법적 의무는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숙련자에게 미리 밝히시기를 권합니다. 작업 판단이 정확하고 재현 가능한지 여부는 현장·기술 전문가가 검증할 영역이고, 법률가는 그 과정의 권리·계약·책임·입증 구조를 설계합니다.
5. 무엇을 기록으로 남길 것인가?
이번 회차의 산출물은 한 쪽짜리 「암묵지 보호 착수 메모」입니다(별첨 3). 이 메모가 비밀관리를 입증해 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회사가 언제부터 어떤 지식을 보호 대상으로 보고 관리하기 시작했는지 보여 주는 첫 기록이 되고, 다음 회에 만들 ‘암묵지 위험지도’의 입력자료가 됩니다.
6. 맺으며
찾아내지 못한 지식은 구조화할 수도, 지킬 수도 없습니다. 거창한 계획보다 공정 한 곳, 책임자 한 명, 착수 메모 한 장으로 시작하기를 권합니다.
다음 회「사라질 위험이 큰 암묵지를 찾는 ‘암묵지 위험지도’」에서는 회사 내부 어딘가에서 사라지거나 새어나갈 위험이 큰 암묵지가 있는지 한눈에 보는 지도를 만드는 방법을 다룹니다.
[별첨] 실무에서 자주 나오는 질문
Q1. 숙련자의 작업을 영상으로 찍어 두면 영업비밀이 되나요?
기록만으로는 영업비밀로 인정 받지 못합니다.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가 있는 정보여야 하고, 비밀로 관리되어야 합니다. 기록한 내용 중에 보호할 정보를 정하여 비밀로 지정하고 접근·이용을 통제하는 일이 그 출발점입니다. 기록 시점을 입증하는 수단으로는 영업비밀 원본증명 제도가 있습니다. 원본증명서를 발급받으면 전자지문을 등록할 당시 그 전자문서에 적힌 내용대로 정보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됩니다(부정경쟁방지법 제9조의2 제3항). 다만 이 추정은 보유 사실과 시점에 관한 것이어서, 그 정보가 영업비밀 요건을 갖췄다는 것까지 증명해 주지는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Q2. 숙련자가 퇴직 후 다른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하면 막을 수 있나요?
현실적으로 직원이 가진 일반적인 지식·기술·경험까지 막기는 어렵습니다. 보호 대상은 회사 고유의 특별한 정보로 좁히고, 재직 중에 그 범위를 특정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숙련자에게 미리 설명하고 참여·인정·보상의 원칙을 정해 두면 분쟁 가능성도 줄일 수 있습니다. 이직 자체를 제한하는 전직금지약정은 별도의 쟁점입니다.
Q3. 로봇·AI 업체가 “데이터는 고객사 소유”라고 하면 충분할까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산업 디지털 전환 및 인공지능 활용 촉진법」은 산업데이터를 생성한 자에게 사용·수익할 권리를 인정합니다(제9조 제1항). 2인 이상이 공동으로 생성했거나 산업데이터가 제3자에게 제공된 경우에는 약정이 없으면 양쪽 모두 사용·수익할 수 있습니다(같은 조 제2항·제3항). 업체가 받은 데이터를 활용해 독자성 있는 새 데이터를 만들면 그 생성자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제2조 제2호 참조).
그 안의 영업비밀이나 개인정보에는 부정경쟁방지법과 개인정보 보호법이 따로 적용됩니다. 그래도 다툼을 줄이려면 원데이터뿐 아니라 학습된 모델과 파생정보를 누가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지, 다른 고객 사업에 재사용할 수 있는지, 계약이 끝나면 무엇을 반환·삭제하는지까지 계약서에 명기할 것을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