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청백의 노동&사람] 민간기업 무기계약직과 사회적 신분
소청백(素淸白) 안성준 노무사(강남노무법인)
I. 1심과 항소심(대상판결) 요지
본 사안은 정규직(호봉직)과 무기계약직(연봉직) 간의 근로조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원고들이 제시한 두 가지 트랙(근로기준법 제6조 vs 헌법 제11조 및 동일가치노동 원칙)에 대해 하급심 법원이 각각 다른 법리적 선택을 했음을 보여줍니다(서울고등법원 2025. 12. 12. 선고 2024나2013287 판결 참조).

II. 주요내용 검토
1. 신분(Status)과 계약(Contract)의 외연
- 일반적 의견 : 고용 형태는 계약의 산물이므로 개인이 선택·이탈할 수 없는 ‘신분’과 동치할 수 없다는 지적은 타당합니다. 근기법 제6조가 예시한 성별, 국적, 신앙은 후천적 변경이 극히 어렵거나 내면의 본질적 자유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 검토의견: 현대 노동시장에서 무기계약직(공무직 등)은 당사자의 자유로운 계약 선택이라기보다, 시장의 구조적 제약과 기업의 비용 절감 기재가 결합되어 형성된 ‘구조화된 계층’의 성격을 띱니다. 대상판결이 “정형화·고착화시키는 사회적 힘을 가진 계속적 지위”라고 명시한 것은 현실 노동시장의 ‘계층화’를 법원이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2. 죄형법정주의 및 노동형법
- 일반적 의견: 근기법 제6조 위반은 형사처벌(법 제114조)이 따르므로, ‘사회적 신분’을 확대 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확장해석 금지 원칙’에 정면으로 위반될 소지가 큽니다.
- 검토의견: 만약 무기계약직 처우 차별이 모두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면 민사상 손해배상을 넘어 수많은 경영진이 범법자가 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사법부가 입법적 결단 없이 형벌 조항의 전제가 되는 구성요건을 판례로 확장하는 것은 권력분립 원칙상 위험한 접근입니다.
3. 헌법상 평등원칙 직접 적용
- 일반적 의견: 사법(私法)관계에는 민법 제750조(불법행위)나 제103조(반사회질서) 등 일반조항을 매개로 헌법 가치가 투영되어야지(간접효력설), 헌법 제11조를 직접 적용해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것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지적입니다.
- 검토의견: 1심처럼 헌법적 원칙을 사기업에 직접 들이대면, 기업의 경영 자율성과 임금체계 설계 권한은 침해를 받습니다. 따라서 하급심 법원들이 ‘근기법 제6조(사회적 신분)’라는 명문의 실정법 조항을 어떻게든 확장하여 포섭하려는 이유도 바로 1심과 같은 간접효력설 위반 논란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III. 대법원 판결 전망
대법원에 상고될 경우, 대법원은 엄격하고 치밀한 법리 검토를 거칠 것입니다.
1. 2023년 공무직 전원합의체 판결의 기조 유지 가능성
대법원은 2023년 9월 공무직 사건에서 “고용 형태는 사회적 신분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비록 보도자료를 통해 ‘사기업 영역은 다를 수 있다’고 여지를 두었으나, 법리적 본질(계약 지위 vs 신분 지위)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이 사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신분’의 정의를 180도 뒤집기는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어려울 것입니다.
2.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조리상 원칙’ 거부
정치권에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근로기준법에 명문화하려는 입법 시도가 지속되고 있으나, 아직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국회가 입법하지 않은 원칙을 판례가 ‘조리’나 ‘헌법 해석’으로 먼저 도입하는 것에 대해 지극히 보수적인 태도를 취해왔습니다.
3. 신의칙 위반 또는 권리남용 법리를 매개로 한 불법행위 책임으로 제한적 인용
대법원은 항소심의 ‘사회적 신분’ 확대 해석을 파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직무 내용이 완전히 동일함에도 단지 명칭(호봉직/연봉직)만 다르게 하여 임금을 차별한 실질이 존재한다면, 이를 ‘사회적 신분’이 아니라 ‘신의칙 위반’ 또는 ‘권리남용(민법 제2조)’ 법리를 매개로 한 불법행위 책임으로 우회하여 제한적으로 인용할 여지는 남겨둘 수 있습니다.
IV. 기업의 인사노무(HR) 실무적 대응 전략
하급심에서 이러한 판결이 연이어 나오고 소송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기업은 대법원 판결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선제적인 HR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합니다.
1. 형식적 직군 분리에서 ‘실질적 직무 분리’로 전환
단순히 소속 부서나 명칭만 바꾸는 사후적 조치는 대상판결에서도 “소송 대비용”으로 저평가되었습니다. 채용 단계부터 직무기술서(Job Description)를 명확히 분리하고, 수행하는 업무의 권한, 책임, 최종 의사결정 수준의 차이를 계량화하여 문서로 정립해 두어야 합니다.
2. 임금 격차의 ‘합리적 이유’에 대한 입증 데이터 확보
시장가치(외부 노동시장의 수급 상황), 진입 장벽(자격증 요구 여부, 공채 시험의 난이도 및 경쟁률), 순환근무 여부(전국 순환 vs 특정 지역 고정) 등 법원이 인정하는 합리적 차등 요소를 발굴하고, 이를 직무평가(Job Evaluation) 시스템 구축을 통해 객관적 점수값으로 남겨두어야 사후 분쟁에서 승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핵심은 결국 ‘실질 직무 가치의 차별화’이며, 이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